6.25 전쟁, 우리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

6.25 전쟁, 우리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

최 응 표 (뉴욕에서)

1950년 12월 13일, 미 제1해병사단장 올리버 스미스 장군은 흥남철수작전이 시작되기 직전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해병대원들의 임시묘지(흥남)를 찾았다.

무덤 앞에 선 스미스 장군은 “너희들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다. 이 민족은 피를 흘려서라도 구원해야할 가치 있는 민족이다.”라는 말을 하며 머리를 숙였다. 부하들의 죽음 앞에 용서를 비는 가슴 무거운 묵념이었다.

스미스 장군은 장진호에서 흥남까지 항공으로 철수하라는 상부의 지시까지 어겨가며 한국인 피난민을 살리기 위해 부상병들만 항공으로 후송하고 일반 장병들은 피난민을 보호하며 피난민과 함께 육로로 철수했다.

만일 상부의 지시대로 항공으로 철수했다면 장병들의 희생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미스 장군은 죽음을 각오하고 자유를 찾아 나선 피난민들을 지옥의 땅에 그대로 내버려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

피와 충성, 신뢰와 전우애로 한 몸이었던 그 부하들을 고향땅도 아닌 얼어붙은 敵(적)의 땅에 묻고 떠나는 장군의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이들의 죽음이 축복의 비가 되어 말라붙은 대한민국의 땅을 적시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고맙고 죄송하고 염치없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전쟁이라는 절망적인 극한 상황 속에서 나뒹구는 것은 전쟁의 잔인성과 인간성에 대한 모독과 나자와 사자만이 있을 뿐, 거기엔 삶에 대한 애착이나 미련, 그리고 희망이니 평화니 하는 사치는 없었다”고 노만 메일러가 그의 전쟁소설 ‘나자와 사자(The Naked And The Dead)에서 말한 것처럼, 전쟁의 잔인성과 인간성에 대한 모독, 그리고 죽은 자와 벌거벗은 자만이 나뒹구는 절망적인 극한 상황 속에서 피어난 이 가슴 뭉클한 감동의 인간드라마가 어째서 67년이 지난 오늘 우리에게는 그저 하나의 전쟁이야기로만 기억되는 것일까?

배신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과연 이런 가슴 따뜻한 이야기(역사의 교훈)가 머무를 자리가 남아있는 것인가.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기억 속에서 지워져가는 6.25전쟁의 傷痕(상흔)은 또 하나의 민족적 비극이다. 배신은 또 다른 배신을 낳고, 배신의 종말은 파멸이다. 이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한국 피난민 대신 죽어간 미 제1해병사단 장병들, 아직도 흥남의 외딴 산골짜기에 누어있을 그들의 영혼 앞에 무슨 말로 용서를 빌어야 하나. 지금 이 환경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한없이 미워진다.

정말 우리가 남이 피를 흘려서라도 구원해야할 가치 있는 민족일까?

스미스 장군은 우리의 어떤 면을 보고 ‘피를 흘려서라도 구원해야할 가치 있는 민족’이라고 했을까? 스미스 장군이 다시 살아 돌아와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고도 똑같은 말을 할까?

얼굴뿐 아니라 마음까지 뜯어고친 우리 국민은 그 때의 모습에 비해 너무나 많이 변해 있다. 차라리 스미스 장군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해버린 모습이 다행인지 모른다. 덜 미안하고 덜 괴로우니까.

‘6. 25전쟁(In Mortal Combat Korea,1950~1953)’의 저자 존 톨랜드는 그의 책 마지막 장(章)을 이런 말로 마무리했다.

“6. 25전쟁은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전쟁이었는가? 잔인성, 어리석음, 실수, 오판, 인종주의, 편견, 잔학행위로 점철된 전쟁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끔찍한 전장에서 용감하게 행동한 사람들, 자기희생을 무릅쓴 사람들, 그리고 적군에게 온정을 베푼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이들이 보여준 인간애야말로 필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그런 희생자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젖어든 거룩한 토양이 키워낸 인류역사상 몇 안 되는 최고의 수혜자다. 그런데도 6. 25전쟁의 기억은 희미해져만 간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인가? 염치가 없다.

토랜드는 1990년을 전후하여 6. 25전쟁에 대한 부정적 견해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며, “잊혔던 그 전쟁이 궁극적으로 공산주의의 몰락을 촉진시킨 결정적 계기였을 가능성이 대두된 것이다. 이것과 관계없이, 그 전쟁에서 싸우다 죽은 사람들은 결코 헛되이 죽은 것이 아니었다.” 고 했다.

잊혔던 그 전쟁이 궁극적으로 공산주의의 몰락을 촉진시킨 결정적 계기를 대두시킨 것이라면, 보통 인간의 잣대로는 감히 측정도 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전쟁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쉽게 잊을 수가 있단 말인가.

6. 25전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이처럼 긍정적인데, 직접 수혜자인 우리 기억 속엔 왜 희미한 그림자로만 남아있게 됐을까? 고마움을 모르고 자기분수를 잊은 채 배신의 시대를 산 국가와 민족이 계속 번영과 평화를 이어간 역사적 사례는 없는데 말이다.

2003년 11월, 도널드 럼스필드 미 국방장관은 서울 방문길에서 ‘거대한 기억상실’을 목격했다며 한국기자와의 인터뷰 한 토막을 소개한 적이 있다.

한국기자: 왜 한국의 젊은이들이 지구 반대편 이라크에 가서 목숨을 잃고 피를 흘려야 하나요?

럼스필드: 왜 미국은 50년 전에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에 미국의 젊은이들을 보냈는가?

거대한 기억상실, 무슨 뜻일까? 거대한 배신, 거대한 분노, 거대한 후회를 보았다는 말로 받아들인다면 잘못된 것일까. 아마 지금 같으면 ‘헬 조선’이란 말을 썼을지도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이 장진호전투 기념비 헌화로 첫 방미일정을 시작했다는 뉴스는 반가움 보다는 낯이 간지러워 참을 수가 없다. 과연 문재인 정권 사람들이 장진호를 입에 올릴 자격이 있는가?

2014년, ‘장진호 전투 기념비 예산책정’을 극구 반대했던 현 여당 민주당 사람들, 뻔뻔해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뻔뻔할 수 있나? 문 대통령은 기념비 앞에 묵념하며 무슨 말을 했을까? 속으로 “이것은 내 진심이 아니다”며 비웃지만이라도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그리고 “—장진호의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나도 없다”고 했다. 원래 문재인의 행태가 그랬지만, 어떻게 눈 하나 깜짝 않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기념비건립 자체를 반대했던 입장에서 밀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2003년 5월, 첫 미국방문에서 “6.25전쟁 때 미국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두 대통령의 말이 어쩌면 이렇게도 닮은꼴인가.

“반미면 어떠냐?”며 반미정서에 흠뻑 저져있던 노무현, 장진호전투 기념비 예산에 적극 반기를 들었던 문재인 세력, 그러면서 반미세력비호에 앞장섰던 그들, 어떻게 장진호 기념비 앞에 설 수 있나? 정직한 대통령 가지기가 이처럼 어려워졌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위대한 시대가 가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해야 하는 저주를 받는다”고 한 조지 산타야나 교수의 경고가 전율로 다가온다. 우리 역사 속엔 영원히 기억해야할 과거가 있는가 하면, 영원히 지워버려야 할 과거가 있다.

정규재 TV는 ‘6. 25전쟁이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했다. 사실이 그렇다. 6. 25전쟁은 희생도 컸지만 혜택도 컸다. 따지고 보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이렇게 巨木(거목)으로 자라는데 6. 25전쟁의 약효는 절대적이었다. 이 역사적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이념의 쓰나미에 씻겨간 약효를 어떻게 되살리느냐는 것이다. 장진호 전투에 통역장교로 참전해 한국 카투사 대원들을 지도했던 이종연 변호사가 주는 충고(교훈)가 좋은 답이 될 것이다.

“이념으로 찢어진 참혹한 전쟁이라고 기억하는 단계는 지났다. 희생자들을 위한 감사의 마음으로 우리 안의 상처를 치유하는 해(새해를 맞으며 한 말)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약해지면 언제 어느 때라도 겪을 수 있다는 오늘의 역사로 인식해야 한다. —이제 살만 하다고 정신적 긴장을 늦추는 순간 언제라도 또 다른 6. 25가 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 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6. 25의 교훈은 국민의식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바로 대한민국이 사는 길이다.

2017.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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