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가는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恨은 어떡하라고

잊혀져가는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恨은 어떡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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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 ‘전쟁의 슬픔’에서 작가 바오 닌은 전쟁의 슬픈 이야기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이 쓰러져야 한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정말 그렇다. 그러나 끼엔이 살아남은 대신 이 땅에 살아갈 권리가 있는 우수하고, 아름답고, 누구보다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 모두 쓰러지고, 갈가리 찢기고, 전쟁의 폭압과 위협 속에 피의 제물이 되고, 어두운 폭력에 고문당하고 능욕당하다 죽고, 매장되고, 소탕되고, 멸종되었다면 이러한 평안한 삶과 평온한 하늘과 고요한 바다는 얼마나 기괴한 역설인가.

정의가 승리했고, 인간애가 승리했다. 그러나 악과 죽음과 비인간적인 폭력도 승리했다. 들여다보고 성찰해보면 사실이 그렇다. 손실된 것, 잃은 것은 보상할 수 있고, 상처는 아물고, 고통은 누그러든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슬픔은 나날이 깊어지고, 절대로 나아지지 않는다.”
그렇다. 우리민족에게 최대의 아픔을 안겨준 6.25전쟁이 멎은 지도 이제 6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갈가리 찢어진 민족의 가슴엔 60년 전의 슬픔이 나날이 깊어지며 아물 줄을 모른다.

바오 닌이 전하는 것처럼, 우리 살아남은 사람들 대신 이 땅에 살아갈 권리가 있는 우수하고, 아름답고, 누구보다 가치 있는 사람들이 전쟁의 폭압과 어두운 폭력 속에 피의 제물이 되었다면, 지금 한국이 누리는 평안과 자유와 풍요는 정말 기괴한 역설 아닌가.

6.25전쟁처럼 정의와 인간애의 승리이상으로 惡과 어둠과 비인간적인 폭력이 승리한 전쟁도 없을 것이다. 그 악과 어둠과 비인간적 폭력의 희생자들이 바로 국군포로와 납북자와 이산가족 아니겠는가.

“잊혀지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다”고 50년 맺힌 恨을 토해내는 탈북 국군포로 유영복씨의 이 한마디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가슴에 평생을 두고 갚아야할 부채로 남는다.

전쟁으로 손실된 것, 잃은 것은 보상할 수 있고, 상처는 아물고, 고통은 누그러든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슬픔은 나날이 깊어지고, 절대로 나아지지 않는다는 바오 닌의 말처럼,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강산은 복구됐고, 상처는 다시 찾은 자유와 풍요로 거의 아물었지만, 전쟁이 남긴 국군포로와 납북자와 이산가족의 슬픔은 나날이 깊어가고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군포로, 납북자, 이산가족의 恨, 어떻게 경중(輕重)으로 따질 수 있겠냐만,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분명히 우선순위가 있다고 본다. 왜냐면 국군포로와 납북자와 이산가족 간에는 명칭자체가 말하는 것처럼 명확한 성격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국군포로,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누굴 위해 목숨을 담보로 전쟁터에 나갔다가 포로가 되었나? 바로 살아남은 우리를 위한 희생이 아니었나. 그들에게 생명의 빚을 진 빚쟁이라는 부채의식이 있다면, 저들을 어떻게 이처럼 외면할 수 있나.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이게 아닌데 말이다.

죽는 것보다 잊혀지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는 탈북 국군포로 유영복 옹(翁)의 恨맺힌 이 한마디에 우리의 미안함과 죄스러움과 염치없음이 녹아있다면 국군포로 문제를 더는 외면해선 안 된다.

국군포로와는 다른 경우지만 납북자문제도 국가가 무한 책임을 져야한다. 좀 지나친 주장일지 모르지만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책임에서 국가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국가권력이 엄연히 살아있는 정상국가의 국민이 적성국(敵性國)에게 납치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것이 국가인데 전후(戰後)에만 5백여 명이 납치되는 동안 국가는 어디 있었고, 그들의 송환을 위해 무엇을 했나?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는 기본적으로 세계적십자와 제네바협정을 이끌어내며 인도주의를 표본적으로 구현한 앙리 뒤낭 정신에 따라 진행해가는 것이 정도가 아닐까 한다.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가 정치논리와 북한 눈치 보기에 밀려 표류한다면 세계경제 10대국과 문명국가로서의 위상뿐 아니라, 자유와 인권을 기본가치로 하는 민주국가의 기본 정신에도 반하는 처사다.

“악마의 얼굴을 보고도 침묵한다면 그 역시 악마와 다를 바 없다.” 데이비드 올턴 경의 말이다.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 국가와 국민 모두가 해결해야할 최우선 과제다.

이산가족 상봉, 물론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이기 때문에 가장 시급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나 자신이 80을 넘긴 월남자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군포로와 납북자와 이산가족, 모두가 시급히 해결해야할 중대사항이지만,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내팽겨 둔 채 이산가족 문제만을 가지고 국가전체가 올인하는 모습은 좀 생각해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恨인들 어찌 이산가족만 못하겠는가.

어떻게 이산가족만 늙어 고령이 된다고 생각하나. 늙고 병들고 고령이 되기는 국군포로와 납북자도 마찬가지다. 인도주의를 이유로 이산가족 상봉엔 그처럼 열을 올리면서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문제에 대해선 왜 말이 없나. 북한의 눈치가 그렇게 무서운가?

국군포로를 국군포로로, 납북자를 납북자로 부르지 못하고 북쪽 X들의 지시대로 ‘전쟁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국가를 제대로 된 주권국가라 할 수 있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뒤틀린 것이다. 민주당, 이러고도 할 말 있는가?

우리 솔직하게 말해보자. 국군포로와 납북자는 自意가 아니라 他意(적국)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이다. 국가가 무한 책임져야할 이유다. 하지만 이산가족은 자유와 평안과 미래보장을 위해 스스로 택한 길이다. 거기엔 어떤 불이익과 고난도 감수한다는 각오와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우선순위를 따져 이산가족 문제 못지않게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 문제도 심도 있게 취급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이산가족 문제를 나 몰라라 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가 이산가족 문제에 가려 국가와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는 것이 참을 수 없이 서글퍼서 하는 말이다.

“잊혀지는 것이 죽음보다 못하다”는 탈북 국군포로 유영복 옹의 그 한 맺힌 한마디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지를 되새기며, 국군포로와 납북자가 국가와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 개인생각을 적어 보았다.

이산가족 상봉으로 그나마 맺힌 한이 다소는 풀릴 수 있겠지만, 정치논리와 북한 눈치에 밀려 잊혀진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맺힌 한은 누가 풀어주나?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도 대북원칙만 있고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에 대해선 아무 말이 없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가 북한 눈치 보기와 정치논리에 밀려 새 정부 정책 밖의 일이 된다면 박근혜 정부 탄생의 의미는 과연 어디 있는 것일까?
국민화합은 이산가족 문제, 국군포로 문제, 납북자 문제가 국민전체의 관심사가 되어 정치논리와 북한 눈치 보기를 밀어낼 때 이루어질 것이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도 더 깊어질 것이다.

최 응 표 (뉴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