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정부가 성공한 이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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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최고의 정규교육을 받은 대통령으로서 인재의 소중함을 알았다

이승만은 청년 시절부터 우리 민족이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선진국(先進國) 국민이 되기를 꿈꾸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국민의 수준(水準)이 선진국의 그것에 이르도록 높이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승만은 우선 자기 자신부터 그러한 높은 수준에 도달하려고 했다. 그는 원래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한학(漢學)을 공부했으나 중단하고, 미국 선교사 아펜셀러가 세운 배재학당(培材學堂)에 들어가 영어와 서양학문을 배웠다. 그러고 나서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학사,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것은 당시로서는 한국에서는 물론 동아시아에서도 최고 수준의 학력이었다. 그리고 세계어인 영어를 모국어처럼 자유자재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다.

대한민국 국민은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리려는 그의 원대한 꿈은 대통령이 된 다음 해인 1949년에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승만 정부의 문맹퇴치(文盲退治) 운동으로 해방 당시 국민의 80퍼센트에 이르던 문맹자 수가 1959년에는 22퍼센트로 크게 줄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고급 인재의 육성(育成)이었다. 대한민국은 일본인들이 통치하다가 해방으로 물러간 뒤에 세워진 나라였기 때문에, 건국초기에 인재가 크게 부족했다. 그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시대에 일본식 교육을 받고 일본 사람들 밑에서 경험을 쌓은 새로운 엘리트를 보존해서 국가 건설에 활용하려고 했다. 그는 김일성과는 달리 그들을 친일파(親日派)로 매도하고 숙청하지 않았다. 인간의 삶은 대대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급격한 혁명(革命)으로 과거와 끊어질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과거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점진적인 개혁(改革)에 의해 개량될 수 밖에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제시대에 키워진 인재들의 수준을 더 높이기 위해 외국유학을 적극 권장했다. 그 때문에 경제적 여건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애에 5천명 이상의 유학생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고급인재 육성에는 한미동맹(韓美同盟)에 따른 미국의 군사원조가 크게 기여했다. 무기를 다룰 기술을 배우기 위해 1만 명 이상의 군인이 미국에 연수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길러진 새로운 엘리트는 1960년대 이후 대한민국이 빠른 속도로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