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正統性과 正體性, 建國理念에서 찾아야

국가의 正統性과 正體性, 建國理念에서 찾아야

Replies
0
Voices
1
Admin

천년을 지탱한 로마의 힘

건국 66주년, 이렇게 긴 세월이 갔는데도 아직 국가의 정통성과 정체성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조국의 모습을 보며 문뜩 떠오르는 것이 셰익스피어의 다.

칼을 빼들고 덤비는 브루투스를 향해 “브루투스 너마저도—”라는 외마디를 남기고 쓰러진 시저의 시신 앞에서 행한 안토니의 연설, 여기서 천년 로마의 힘을 보며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본다.

“사람이 행한 罪惡은 그 사람이 죽은 뒤에도 살아있지만, 善行은 그 사람의 뼈와 함께 무덤에 묻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국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건국대통령과 산업대통령의 功績(공적-업적)은 무덤에 묻히고 김대중과 노무현이 남긴 害惡(해악)은 여전히 살아서 나라를 괴롭히고 있다.

안토니의 연설을 되새기며 부러운 것은 善과 惡, 거짓과 眞實을 분별할 줄 아는 로마인들의 정신과 지혜와 시민수준이다.

시저가 제왕의 꿈을 지닌 야심가이기 때문에 그를 죽였다며 “내가 시저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시저를 죽였다– 여러분은 시저가 죽어 자유인으로 살기보다 시저가 살아서 모두가 그의 노예로 죽는 것을 원하십니까?”라는 브루투스의 거짓선동은 로마 군중을 매혹시켰다.

그러나 시저를 암살한 브루투스의 거짓선동에 현혹되어 야심가 시저를 단죄해야 한다고 외치던 군중은 안토니의 연설을 듣고 다시 선과 진실 편에 선다.

“—브루투스는 시저가 야심가였다고 합니다. 시저가 과연 야심가였습니까? 시저는 외적을 토벌할 때마다 수많은 포로들을 로마로 데려왔고, 그들의 몸값을 받아 이 나라의 국고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푼도 자기 것으로 챙기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야심에서 우러난 행동입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굶주려 울 때, 시저도 같이 울었습니다. 이것이 야심입니까?—.”

안토니는 계속해서 양심의 말을 했고, 진실을 말했고, 시저의 공적을 하나하나 설득력 있게 설명하자 군중은 시저의 업적에 감사하며 진실과 정의의 편에 서서 거짓선동자 브루투스 일파를 제거하는데 동참했다. 이것이 천년을 지탱한 로마인의 위대함이고 로마역사의 힘이다.

그런데 우리에겐 로마인들처럼 진실을 듣는 귀가 왜 없을까. 그들처럼 거짓과 진실을 분별하는 지혜가 왜 없을까. 선과 악을 분별하는데 있어서 왜 로마인들처럼 냉철하고 理性的이지 못할까.

로마인들에겐 우리에게 없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 價値(가치)인 ‘感謝(감사)’ 즉 세계일등 국민으로서 누리는 자유와 평화와 풍요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다.

진실을 듣는 귀가 거기서 열리고, 거짓과 진실을 분별하는 지혜가 거기서 나오고, 그 바탕 위에서 그들은 냉철하고 이성적 인간이 될 수 있었다. 로마인들과 우리의 차이는 바로 ‘감사’의 有無(유무=있음과 없음)에 있다.

무너진 가치관의 복원

‘문명의 충돌’로 잘 알려진 새무얼 헌팅턴은 라는 저서에서 문화가 정치경제에 미치는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1960년대 초 경제사정이 비슷했던 두 나라, 한국과 아프리카의 가나를 예로 들었다.

30년 뒤 한국은 통상 규모 세계 14위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반면 가나는 제자리에 머문 채 1인당 GNP가 한국의 15분의 1 수준에 끝인 이 엄청난 격차의 결정적 요인을 헌팅턴은 문화의 차이에서 찾았다.

다시 말해 한국인들이 중요시 해온 전통적 가치인 예절, 검약, 근면, 교육, 극기정신, 기강 등의 중요한 문화적 가치가 가나와의 격차를 벌인 주요 원인으로 보았다.

이처럼 후진국과 선진국의 격차를 만들어내는 결정적 요소가 헌팅턴의 주장대로 문화적 가치에 있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從北 좌경세력에 의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소중한 우리의 정신유산을 제자리로 되돌려놓는 일, 여기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있다.

더욱이 지금처럼 眞實을 말하는 것이 거짓말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세상에서는 전통적 문화가치의 회복 없이는 국가발전의 동력은 물론 국가의 정통성과 정체성도 찾을 수가 없다. 거짓말이 화려하고 거창할수록 더 화려하고 더 크게 출세하는 세상에서 누가 불이익을 당하면서까지 양심 편에 서서 진실을 말하고 정의 편에 서려 하겠는가.

가난하고 억눌리고 처절했던 과거의 배고팠던 역사, 복종만을 강요당하며 엎드려 지내던 노예(일제 식민시대) 시절의 암울했던 과거를 벌서 잊었는가.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營養(영양)이 넘쳐나 다이어트를 해야 하고, 그처럼 화려한 국내 골프장도 마다며 해외 골프여행을 즐기게 되고, 시골마을까지 자가용이 홍수를 이루고, 쌀이 남아돌아 고민하는 부자나라가 되었는가.

“버려야 할 쓰레기는 이미 버려졌어야 하고, 아직도 가지고 있다면 다시 방치되기 전에 버려야 한다”며 버려야 할 과거청산은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했던 조지 산타야나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과거를 되풀이해야하는 저주를 받는다”고 했다.

산타야나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인류역사에서 과거를 회고하며 주어진 현재에 감사할 줄 모르는 국가와 민족이 계속 번영을 이어간 例(예)는 보지 못 했다. 그것이 역사의 순리고 하늘의 이치다. 그래서 “민족의 敍事詩(서사시)를 기억 못하는 민족은 언젠가는 망한다”는 어느 평론가의 경고가 귓전을 맴돈다.

언제나 역사를 움직이고 선도해나간 민족은 기적의 시대, 감동의 시대, 기회의 시대에 감사하고 과거를 기억하는 민족이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국가 정통성과 정체성, 건국이념에서 찾아야

그런 의미에서 反역사관과 김일성, 김정일의 주체사상에 미친 從北 세력에 의해 실종된 국가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건국주역들의 건국이념에서 다시 찾아보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소련의 對日戰(대일전)과 함께 계획된 韓半島 공산화 전략이라는 스탈린의 음모를 폭로하고 차단하면서 공산세력을 제압하고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건국주역들의 건국이념(정신)과 세계 최악의 조건에서도 2차 대전 후 최 고속 성장과 富를 창출하면서 세계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성공한 대한민국의 현재 속에서 찾아보자는 것이다.

해방과 함께 공산집단과 자유진영의 대결장이 된 살벌했던 解放政局(해방정국)이라는 우리만의 특수 상황 속에서 대한민국을 건국한 건국주역들은 새로 세워질 국민국가의 건국이념을 민족의 전통적 가치인 정신문화에서 찾았고, 그 바탕 위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했다.

역사적 사건이나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가 객관적 사실 검증 없이 포퓰리즘에 휩싸여 어떤 이익집단이나 특정 이념의 도구화가 될 때, 진실은 허구에 묻히고 왜곡된 역사관과 날조된 정치선전으로 국민정신은 병들고 나라는 크게 요동치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오늘의 한국 현실이다.

지금 왜 건국이념인가? 지금 왜 이승만 정신인가? 이 역사적 話頭(화두)는 한마디로 從北 反국가세력의 파괴공작으로 국가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절박감을 국민이 인식 못하는 데서 나온다.

다시 말해 우리민족이 본디부터 가지고 있던 진실을 듣는 귀, 거짓과 진실을 가리는 지혜, 사리를 분별하는 냉철한 理性들이 북한의 주체사상에 오염된 불순세력에 의해 난도질을 당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해방정국 3년, 외부적으로는 소련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좌우합작정부를 강요하는 美軍政(미국정부)과 유엔 한국 소위원회의 압력, 그리고 김구, 김규식을 중심으로 한 내부세력의 좌우합작정부 수립압력을 거부하며 자유대한을 설계하는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건국주역들의 피와 눈물과 땀에 젖은 건국과정은 한편의 드라마다.

당시로서는 終戰(종전)후의 세계는 공산주의가 지배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던 시절이다. 그래서 이승만의 정치고문이었던 로버트 올리버 박사까지도 反共, 反蘇(반소)를 고집하면 독립 후에 세워질 좌우합작 정부에서 제외될 수 있다며 좌우 합작노선을 받아드리도록 권하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이승만은 좌우 합작이란 명분 밑에서 잘 조직된 좌파세력이 흩어진 우파세력을 압도함으로서 한반도를 공산화하고 한국인들을 소련의 노예로 만들 것이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절했다.(이주영 교수의 ‘이승만의 건국 활동과 좌우합작 론의 극복’에서). 거의 70년 전 이승만은 오늘의 한국현실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다. 이것이 바로 그의 위대함이다.

앞으로 전개될 국제질서의 변화에 대한 이승만의 예리한 통찰력과 민족의 미래를 내다보는 뛰어난 慧眼(혜안),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운명을 건 이승만의 과감한 결단력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다. 김구, 김규식의 남북연립정부 주장과 대한민국 건국 반대 운동도 이승만의 자신과 확신에 찬 신념이 아니었다면 꺾을 수가 없었다.

한반도의 비극은 1945년 9월 20일(해방된 지 약 한 달), “소련군 점령지역에 단독정부를 수립하라”는 스탈린의 지령으로 시작됐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선포 이전에 이미 북한에 공산정권이 수립돼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북한은 물론 남한의 종북 세력은 이 사실을 철저하게 숨기고 있다.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건국주역들의 정신(건국이념)을 외면하고 국가 정체성을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국가의 정통성과 정체성은 건국이념의 올바른 인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토마스 제퍼슨은 “역사는 사람들에게 과거에 대해 알려줌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게 한다”고 일러 준다. 그런데 종북 성향 학자들과 그 추종자들은 올바른 판단을 못 하도록 철저하게 역사적 사실을 은폐한 채 거짓말과 정치선동으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

이제 성공한 대한민국의 건국과정과 발전과정, 그리고 국민(인민) 수 백 만을 굶겨 죽일 정도로 완전히 실패한 공산세습 독재집단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비교 공부하면 대한민국의 위대한 정통성과 정체성이 보일 것이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미국 방문기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우리의 공동목표는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이뤄야 하는 평화여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단지 패배와 인간 자유의 종말을 초래할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표상은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지켜야 하는 正義여야 합니다. 정의란 우리가 다른 방법으로서는 획득할 수 없는 평화, 옳은 것의 승리, 그리고 자유에 이르도록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 모두를 자유와 정의를 위해서 바쳐야 합니다.”(이현표의 이승만 대통령 ‘55년 만에 영문연설로 부활’에서)

우리는 여기서 이승만 정신의 정수를 읽을 수 있다. 이 정신으로 이승만(건국주역들)은 대한민국을 설계하고 또 지키며 오늘의 번영의 기틀을 구축했다.

사이비 역사가들의 수정주의사관과 주체사상 신봉자들의 악의적인 정치선동으로 철저하게 짓밟히고 버려진 숭고한 건국이념(정신)이 우리의 時代精神(시대정신)으로 되살아날 때 국가의 정통성과 정체성은 옛 모습을 되찾을 것이라 믿으며, 우리민족에게도 로마인들처럼 진실을 듣는 귀, 거짓과 진실을 가리는 지혜, 선과 악을 분별하는 냉철한 이성을 주시기를 하늘에 빈다.

대한민국역사 바로 알리기 운동 미주본부 대표